봉준호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은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4관왕을 거머쥔 작품입니다. 비영어권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첫 사례이며, 한 가족이 또 다른 가족의 집에 스며드는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의 빈부 격차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냈습니다. 반지하와 저택, 그리고 지하 벙커라는 세 공간을 수직으로 배치한 구조가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반지하와 저택을 잇는 수직 공간 설계
기생충의 가장 큰 정체성은 공간 그 자체에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기생충의 대부분 사건이 집안에서 이뤄지며 그 집이 수직으로 만들어졌고 각 공간이 계단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직접 언급한 바 있습니다.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 집은 길에서 내려가야 도달하는 공간이고, 박 사장 가족이 사는 저택은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다다르는 공간이며, 그 저택 아래에는 본래 건축가가 만든 방공호 형태의 지하 공간이 또 한 층 숨어 있습니다. 영화는 이 세 층위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계급의 위계를 시각화한 장치로 활용합니다. 기우가 처음 박 사장 집에 과외 면접을 가는 장면에서 어둡고 좁은 골목을 지나면 햇살이 비치는 부촌의 넓은 길이 펼쳐지는 연출은 두 세계의 경계를 한 컷으로 보여주는 구성입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장면에서 박 사장 가족에게는 캠핑이 취소되는 사소한 일이지만, 기택 가족에게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며 반지하 집을 침수시키는 재앙이 됩니다. 같은 비라도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이 장면은 기생충이 공간을 어떻게 계급의 언어로 번역해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과 미술 설계
기생충은 시나리오부터 미술까지 봉준호 감독 특유의 정교한 설계가 영화 전반을 지탱하는 작품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2015년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에게 처음 아이디어를 전달할 당시 데칼코마니라는 제목의 15페이지 분량 트리트먼트를 건넸고, 옥자 작업을 마친 뒤 2017년 9월부터 한진원 작가와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써내려갔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박 사장 집은 실제 존재하는 가옥이 아니라 세트로 지어진 공간이며, 거실의 큰 창과 정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비밀 벙커까지 모두 영화의 주제를 시각화하기 위해 이하준 미술감독과 함께 설계됐습니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로우 테이블은 정사각형 판 다섯 개와 금속 다리를 조합해 제작한 것으로, 기택 가족이 박 사장 가족의 갑작스러운 귀가에 숨어 들어가는 결정적 장면의 무대가 됩니다.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주방 가구의 색감부터 서랍 구조까지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메라의 움직임 또한 영화의 메시지와 직결되는데, 오프닝 시퀀스에서 반지하 창문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려가는 틸트 다운 촬영이 사용되고, 엔딩에서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과 함께 카메라가 다시 아래로 내려옵니다. 떨어지면서 시작해 떨어지면서 끝나는 구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비영어권 영화가 갈아치운 아카데미 역사
기생충의 파장은 한 편의 영화가 거둔 성취를 넘어 시상식의 역사 자체를 새로 썼다는 점에 있습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2020년 2월 9일 LA 돌비 극장에서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총 4개 부문을 수상했고, 그해 아카데미 최다 수상작이 되었습니다.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1939년 위대한 환상을 포함해 9차례에 불과했고, 기생충은 그 10번째이자 실제 수상에 이른 첫 작품이 되었습니다.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함께 수상한 것 또한 아카데미 사상 처음이었으며, 각본상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이후 18년 만에 비영어권 작품이 받은 사례이자 아시아 영화로는 최초의 기록이었습니다. 한국 영화는 1962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시작으로 매년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해 왔지만 후보 지명조차 받지 못했는데, 기생충이 단숨에 이 기록을 갱신한 것입니다. 칸 영화제에서는 2013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이후 처음으로 만장일치 황금종려상을 받은 한국 영화로 기록됐고, 칸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쥔 사례는 1955년 마티 이후 매우 드문 성취였습니다. 기생충은 전 세계에서 약 2억 5,755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거두며 상업적 성공과 평단의 인정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